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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홍길동

2024.08.05.

인물정보_중국_시진핑.hwp
영문명 Xi JinPing 국적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직책 국가주석
생년월일 1953 년 06 월 15 일 성별 남 출생지 중국 베이징
가족관계 배우자 펑리위안, 자녀 시밍쩌, 아버지 시중쉰, 동생 시위안핑
학력

청화대학 대학원 법학 박사

  • 칭화대학 화학 학사
주요경력

2013.3 ~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 2013.3 ~ 중국 국가주석
  • 2010.10 ~ 2013.3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 2008.3 ~ 2013.3 중국 부주석
  • 2007.12 제19대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장
  • 2007.10 ~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상무위원회 위원
  • 2007.10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제1서기
  • 2007.3 ~ 2007.10 중국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
  • 2002 ~ 2007 중국 저장성 당위원회 서기
  • 2002 ~ 2003 중국 저장성 성장
  • 1999 ~ 2002 중국 푸젠성 성장
  • 1974 ~ 중국 공산당
  • 1971 중국 공산주의청소년연맹 당원
참고사항 ※ 아베 前 일본 총리의 평가 : “시 주석은 자신이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미국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고 민주당이나 공화당 양당 중 하나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음. 이는 시 주석이 결코 사상이나 신조 때문이 아닌, 오로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을 뿐이며, 이런 측면에서 시 주석은 강렬한 현실주의자임.” (2023.2월 발간 회고록)
성장배경
  • 중국 공산당 원로 시중쉰(習仲勛, 1913-2002)의 차남으로 1953.6.15 베이징 근교('진(近)’) 에서 출생하였고, 당시 베이징의 옛 명칭인 베이핑 (北平)의 ‘핑(平)’ 자를 따 진핑(近平)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알려짐.
  • 간부 자녀 학교(81학교) 재학 중 부친의 실각(1962년)으로 1969년 (16세) 옌안(延安)으로 하방(下放)되어 동굴에서 생활하는 등 7년간 고초를 경험함. ※ 7년 동안의 하방 생활에 대해 시 주석은 두 가지 가르침을 얻었다고 회고하면서, 첫째 현실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실사구시란 무엇인지, 군중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둘째 칼은 돌 위에 갈고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 단련된다는 자신감을 키웠다고 자주 언급
  • 이후, 문화혁명(1966-76)이 끝나갈 무렵인 1975년 가을 ‘공농병 (工農兵) 추천생*’ 신분으로 칭화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함. * 당에 대한 충성이 강하고 업무실적이 뛰어난 젊은 ‘노동자(工)·농민(農)·병사(兵)’들을 대상으로 현지 당간부가 대학 입학을 추천하는 방식
가치관
  •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이념적 성향이 짙은 지도자로 알려져 있음. ※ 케빈 러드 前 호주 총리의 평가 :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완전히 끝장냈다. 그는 그 자리에 새로운 형태의 마르크스주의적 국가주의를 만들었고, 이것이 중국의 정치·경제·대외정책의 본질과 외형을 결정짓고 있다”, “시진핑이 정치적 측면에서는 사회 전면의 공산당 통제를 강화하는 레닌주의 좌파, 경제에서는 국유기업 중심의 마르크스주의적 좌파, 외교에서는 ‘늑대외교’와 같은 공격적인 민족주의 우파 정책을 펴고 있다” (Foreign Affairs 2022.11/12월호 기고문)
친소관계
  • 중국 당‧정‧군 고위인사들의 자제를 통칭하는 '태자당' 출신으로 당 내외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함.
  • 칭화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칭화방’(칭화대 출신 중국 고위 인사)의 일원이며, 왕치산(王岐山) 前상무위원, 저우샤오촨(周小川) 前인민은행장 등과 함께 칭화대 출신 신세대 태자당으로 구분됨.
  • 최고지도자(당 총서기·군사위 주석·국가주석)에 오른 이후에는 측근 인사들을 당‧정 요직에 대거 등용, '시파이(習派)' 또는 ‘시자쥔 (習家軍, 시진핑 사단)'으로 불리는 새로운 정치적 네트워크를 구축함.
대내외 평판
  • 원만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최고지도자 지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내성적이라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로 무색무취한 low-key 행보를 지속하였다는 분석임. ※ 리콴유(李光耀) 前 싱가포르 총리의 평가 : “그릇이 큰 대인의 인상을 받았으며, 문제를 심사숙고하며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지 않는 엄숙함이 있었음.”(자서전, ’17.7월 출간)
  • 아울러, 외적 이미지가 부드러운 것과 달리 강단이 있고 소신이 뚜렷하여 고집과 추진력이 있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라는 평임. ※ 덩위원(鄧聿文) 학습시보 前 부편집장의 평가 : “그는 부드러운 사람에게는 부드럽지만 공격적인 상대에게는 절대 굴복하지 않음. 속은 네모처럼 엄격하지만 겉은 동그라미처럼 부드러운(外圓內方) 사람임.”(중앙일보 인터뷰, 2013.5.20) ※ 시진핑 전처 커샤오밍의 평가: "그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고 큰일을 하고 싶다는 이상이 있는 사람이었으며 하는 일마다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고 꾸준하게 추진하였음."(영국계 화교신문 영국교보 인터뷰 시, 2015.9월)
인물 관계도